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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정의 Why를 찾아서 - 김례진 대표

내 감정의 Why를 찾아서

Vision Viewer 연구소 대표  김례진


7살... 너무도 순수하고 맑은 영혼이 또 숨을 거두었다.

의자에 손발이 묶인 채로 친엄마에게 매를 맞고, 그대로 출근한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아이는 의자 위에서 얼마 남지 않은 숨을 거둔 채, 엄마의 손에 의해 7살 아이에게는 너무도 무서울 깜깜한 땅 속에 암매장으로 결국 동의하지 않은 짧은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과거 그 어떤 공포영화나 책에서도 다뤄지지 않았던 끔찍한 실제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를 도배하고 있다. 그나마도 헤드라인 자리도 아니고, 인터넷 화면에서 봐달라고 깜빡이는 베너광고 자리도 아닌, 정말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대로 스쳐지나갈 수많은 뉴스들 속에 너무도 억울한 죽음이 단 한 줄의 제목으로 파묻히고 마는 참으로 분통이 터지는 그야말로 불통의 세상이 아닐 수 없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부모가 자식을 때리거나, 자식이 부모를 때리고, 남편이 아내를 때리고, 학생들이 친구를 때리는 폭력이 주를 이루던 사건들이 이제는 그 수준을 넘어 죽음이라는 문턱을 너무 쉽게 넘나들고 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아름다운 7살 생명 앞에서 느껴야할 것은 애도의 감정만은 아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그 아이의 엄마가 화를 주체하지 못한 진짜 이유 말이다.”

미국에서 발생한 사고를 집 안방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엄청난 속도의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고, 막히는 영어 단어들을 굳이 두꺼운 사전을 찾아보지 않아도 스펠링만 치면 단어에 숙어에 문장까지 나오는 초 간단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심지어 번역기 어플을 통해 전혀 다른 언어의 외국인과도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거늘 어찌하여 가장 가까운 관계 안에서 부모와 자식 간에, 친구들 간에, 직장동료/상하 간에 이토록 아픈 불통을 겪고 있단 말인가?

서점에 가면 소통에 관련된 책만 정리되어 있는 책장이 수십 개에 달하고, 그 수많은 책 중에 단 한권도 대충 쓰여 진 책은 없다. 적어도 수십 년을 그 분야에 몸담은 분이거나 혹은 수년간의 연구와 검증으로 수정하고 또 수정을 거듭한 저자의 헌신으로 출간된 책이 1만원이 조금 넘는 가격으로 세상에 기부되어 지고 있다.

SNS는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안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국경을 넘어 팔로잉하고 팔로워가 되는 상상초월의 글로벌한 소통이 이뤄지고 있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까운 관계 안에서 아픈 불통을 겪고 있으니, 필자는 왕따, 자살, 학대, 성폭력, 이혼, 살인에 관한 뉴스를 볼 때마다 애도와 탄식을 뒤로 하고, 그 누구도 등 떠민 적 없는 막중한 책임감에 시달리곤 한다.

재발의 위험에 놓인 또 다른 피해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보다 확실한 대책보다, 가해자들에 대한 범죄동기와 그 심리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필자에게 던져지는 사명과도 같았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역경이나 시련을 이겨내는 마음의 근력을 회복탄력성이라고 한다.

회복탄력성은 자기조절능력과 대인관계능력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데(김주환 저자의 ‘회복탄력성’에서) 그 첫 번째 요소인 자기조절능력에서 필자는 그 답을 찾고자 한다.

자기조절능력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1.감정조절력, 2.충동통제력, 3.원인분석력이다.

감정조절력은 스스로 부정적인 감정을 잘 컨트롤하고 긍정적감정으로 건강한 의식을 유지하는 능력이고, 충동통제력은 기분에 휩쓸리는 충동적 반응을 억제하는 능력을 말한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심각한 범죄의 동기를 자기조절능력 안에서 굳이 순서를 정하자면 스스로 부정적인 감정이 조절이 잘 안 돼서(감정조절력), 그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려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충동통제력)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 또한 폭행이나 살해하고 싶은 충동이 먼저가 아니라, 그전에 부정적인 감정이 제대로 조절되지 못한데서 초래된 결과가 결국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범죄로 이어진 셈이다.

아이러니한건 한국인이 다른 나라에 비해 충동통제력이 유난히 높고, 미국과 비교했을 때, 훨씬 높은 수준을 보인 유일한 능력이 바로 충동통제력이다. 그렇다면 이 결과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한국인의 정서에만 존재하는 “화” 즉 “홧병”에서 찾아보면 쉽다. “홧병”의 근원은 참는데서 생기는 병이다.
한국인은 어려서부터 배우는 인성 중에 하나가 바로 
“참을성”이다.

배가 고파서 빨리 밥을 먹고 싶어도, 어른들이 수저를 들기 전까지는 참고 기다리는 것을 미덕으로 배웠고, 학교에서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놀고, 먹고, 자고 싶은 기본적 욕구까지 참고 공부에 집중하는 것을 당연한 인내로 배웠고, 직장에서는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인사고가 때문에, 승진 때문에, 생업이기 때문에 꾹 참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결혼해서는 남편에게 맞아도 부모 얼굴에 먹칠할 수가 없어서 참고, 자식들 때문에 참고, 당장 생활고 때문에라도 참는다. 한국 사람이 충동통제력이 높은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참는다. 참아도 아주 잘 참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화가 쌓이면 그 “화”를 술로, 쇼핑으로, 폭식으로 해소하기 시작한다. 물론 운동, 등산, 문화생활 등 건강한 취미활동으로 해소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화”는 한계에 다다르면 충동적인 자기 파괴적 습관을 통해 엉뚱하게 화풀이되는 경우가 많다. 더 큰 문제는 주체하기 힘든 “화”가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화풀이된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성이나, 노인, 아동학대가 나날이 늘어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죄 없는 약자의 피해를 막기 위해 충동을 억제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까? 아니면 억눌린 화를 해소할 수 있는 건강한 방법을 찾아야 할까? 단순히 충동을 억제하고 화를 해소하는 것은 사후대책에 불과하다. 화를 참아내는 그 이전 단계, 즉 충동이 일어나기 전의 단계에서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감정조절력인데, 본인 스스로 부정적 감정을 잘 컨트롤하고 긍정적으로 건강한 의식을 유지하는 능력으로 앞서 설명한 바 있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일지라도, 절대 비관하지 않고 긍정 마인드를 유지하는 것! 어쩌면 긍정적 감정조절력은 그들에게 또 다른 인내를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그 아이의 엄마가 화를 주체하지 못한 진짜 이유 말이다.” 화가 난 진짜 이유를 알았어야 했다.

자기조절능력의 마지막 요소인 “원인분석력”이 중요한 대목이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분노가 치미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상대방이 잘못을 해서 화가 나기도 하고, 상대방에게 잘못을 저질러서 화가 나기도 하며, 억울해서 나는 화도 있고, 오해로 인한 화도 있으며, 때로는 몸이 아파서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런데  꾹꾹 참아왔던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하면 “욱”하고 화부터 내기 시작한다. SNS를 통해 국경을 넘어 전 세계와 소통하지만, 복잡 다양한 감정을 단순히 “좋아요”, “슬퍼요”로만 클릭하면 되는 간단한 감정표현에 익숙한 나머지, 왜 화가 났는지 원인을 알아 볼 틈도 없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감정만을 화나 짜증으로 결정지어 버리고 진짜 감정을 살피는 데 최소한의 시간도 정성도 쏟지 않는다. 남의 감정이나 눈치를 살피는 데는 엄청난 에너지를 쏟으면서 말이다.

“원인분석력” 이라고 하면 다소 어렵게 느껴지지만, “내 감정 알아보기”로 생각하면 쉽다. 꾹꾹 참아온 화는 가장 먼저 얼굴에 드러나고, 말투나 눈빛, 행동으로도 드러난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게 전부가 아니다. 얼굴이 왜 굳어지는지, 말투가 왜 까칠해지는지, 왜 상대방이 하는 짓마다 미운지 하나씩 꺼내보기 시작하면 내 안에 꾹꾹 눌러져 있던 진짜 감정이 나오기 마련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거니와, 굳이 고요하고 고급진 풍경이 아니어도 가능하다. 명상도, 고독도 아니며, 어려운 해탈도 아니다. 내 감정을 솔직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정도의 시간과, 진짜 감정을 헤아리고자 하는 정도의 정성이면 된다. 그 시간은 남의 눈치나 남의 감정을 살피는 것보다 훨씬 쉽고, 더 큰 의미가 있다.
왜 이렇게 화가 나지? 여기에서 그냥이라는 감정은 없다.

분명히 내 감정에 영향을 미친 상대방의 태도에 문제가 있거나, 혹은 상대방에게 바라는 요구사항이 있거나, 아니면 상대를 질투하는 자신이 싫어서일 수도 있고, 하필 화가 나 있을 때 상대방이 말을 걸어와서 더 화가 나버린 다양한 이유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찬찬히 들여다봐야 화가 난 진짜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어린 아들이 마시라고 건넨 물을 엎질러 버렸다.
너무도 자상하게 “아이구! 옷이 젖어버렸네. 실수해도 괜찮아”
너무도 잔인하게 “빨리 마시라고 몇 번을 말해. 똑바로 손 들어!”
물을 엎지른 아이의 실수는 같지만, 결과의 차이는 엄마의 감정에 따라 달라진다.

더 이상 섣부른 감정의 판단이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화풀이되지 않도록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에게 가장 우선할 소통은 바로 “나의 진짜 감정과 소통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 감정의 “Why”를 찾아야 그 감정을 해소할 “How to”가 생기는 법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