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달인
열린사이버대 교수 박채필
가장 가까운 이와 소통하는 것이 진정한 소통 리더십의 첫걸음이다!
현대사회를 살면서 지금 우리들이 절실하고 애절하게 갈망하고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명품 백. 고급차. 좋은 아파트, 다이아, 돈, 권력 등일까요?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애절하게 갈망하고 원하던 것들이, 위에 나열한 것들로서 다 소유했다고 가정해보세요. 삶의 만족과 행복에 있어 모든 것을 채울 수 있을까요?
이러한 것들이 모두 채워져 있더라도 진정으로 소통되지 않으면 반대로 불통인데, 사실 여기서 냉정히 생각해보세요. 소통이란 잘 흐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소통되지 않으면 불통이라고 하지만 정확히 표현하자면 “고통”이라고 할 수 있지요.
예를 들어 흐르지 못하고 오래도록 고여 있는 웅덩이나 연못의 물을 보면 썩어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고 이끼가 잔득 끼어있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마찬가지고 사람들 간 소통되지 않으면 관계 속에서 마음이 썩고 안 좋은 냄새가 나서 결국, 서로 미워하는 부정적인 악한 마음이 생겨 결국 마음의 노예가 되고 감정의 노예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정서적인 친밀감, 친밀도가 낮은 사람보다 가족이나 친구, 친인척 등 친밀도가 높은 사람, 소위 살면서 가장 가까이 접촉하는 내 가족 내 주변 사람들과 소통되지 않으면 정말이지 고통스럽기 짝이 없지요.
예를 들어 당신이 집에서 출근길에 아내와 다투고 언쟁하고 나와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앞집 여자를 만나면 격식과 예를 갖추어 환하게 인사를 건네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내 아내 내 가족에게는 늘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감사한 마음과 최선을 다 하지 않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지요.
내 아내를 영부인처럼, 내 자식을 대통령의 자식처럼 대한다면 그 관심과 대우를 받고 하루를 여는 가족들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리고 최고의 지지를 받고 하루를 살아낸 내 가족에게로 부터 돌아오는 대우는 과연 어떠하겠는지요! 이쯤에서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실까요?
“내 아내이니, 내 자식이니까? 친구니까? 이해하겠지 괜찮겠지”라고 잘못 생각하는데 아주 큰 오산이고, 오만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럴수록 더 예의 있는 언행을 보여야 하고 소중하게 다뤄야만 진정한 소통이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지요. 무슨 이런 것이 소통이냐구요? 사회 속에서 중대한 관계를 잘 이어가는 것이 소통이라구요? 자, 그럼 소통을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남편이 하루 종일 직장에서 일하고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퇴근하여 아내와 식사 자리를 합니다. 아내가 종일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참새처럼 이야기하는데 “여보 글쎄 오늘 마트에서 앞집 아줌마를 만났는데 물건을 한 트럭을 사는 거야? 진짜 미친년 같아 나는 살림 잘하는 거지?”라고 가정해볼까요?
이러한 경우 아내는 남편에게 앞집 여자와 비교하면서 살림 잘한다고 인정을 받고 관심도 받고 싶은, 나름대로 욕구가 있는 것인데 아내의 말에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일단은 무조건 공감해주고 맞장구를 시원하게 쳐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남편들은 아내의 말에 공감해주고 맞장구 쳐주는데 익숙지 않고 학습되지 않아 일단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화부터 내게 되지요. “야 너나 잘해 너는 살림하는 게 더 엉망이야. 솔직히 앞집 아줌마보다 나은 게 뭐가 있는데 앞집 여자 흉볼 시간에 돈이나 벌어오던지 집안 구석구석 청소나 해라”는 식으로 쏘아 붙이지요. 이러는 남편에게 “예, 여보 제가 잘못 했어요”라고 답하는 아내가 어디 있겠습니까!
대부분의 아내들은, “당신한테 말하는 내가 바보지. 미쳤지. 내가 벽을 보고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다시는 당신하고 이야기하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며 밥을 먹다말고는 숟가락을 던지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지요. 그러면 며칠이고 오랜 시간동안 말도 안하고 각방도 쓰면서 불편하게 지내게 됩니다. 한집에서 살면서 얼마나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일까요.
여러분은 과연 어떤가요!
우리는 평생을 진정한 보물을, 내 가정 안에 파 묻어두고 밖으로 돌면서 보석을 찾아 헤매지는 않습니까! 결국, 무덤 속에 들어가기 직전에서야 그것을 발견하고 후회를 하게 되지요.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소통이 있지 않습니까! 아궁이에 불 지펴 밥을 짓고, 새벽 방구들을 데워 주시던, 말없이 주셨던 부모들의 그 사랑이야 말로 위대한 소통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 년 동안 뼈아프게 농사를 지어 자식을 살찌우고, 봄이 되면 나물을 캐다 상 위에 얹어내 주시던 우리나라 부모님들이야말로 몸소 자식에게 사랑의 소통 꾼이지 않았는가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최첨단 과학문명 위를 걷는 우리의 자녀와 직장 동료들, 이러한 사회현실 속에서 소통이란 과연 어떤 것부터 치고 나가야 할까요? 돈만 주면 얻어지는 것들과 자녀와 내 아내와 남편과 끈끈한 정을 느낄 만큼의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말입니다. 예전에도 똑 같이 돌아가던 시간이 왜 요즘에 와서 우리의 삶을 바쁘게 만들어 놓아 진정한 가족 간의 소통을 방해하는 것인지,,,,,,
실은 너무 많은 관심대상에 허덕일 뿐이지요. 하지만 방법이 없지만은 않습니다. 자 열심히 일하고, 바쁘게 활동하는거지요. 그리고 가족과 함께 할 시간에는 다른 생각은 일체 하지 않으면 몰입할 수 있습니다. 그 몰입하는 시간이야 말로 소통을 가장 원활하게 할 기회인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 몸을 먼저 돌아보고 건강해야 환자를 돌아볼 수 있는 의사처럼, 내 가족이 행복 할 수 있도록 소통꾼이 될 수 있는 가장인 내가, 여러분들이 지금 현 시대에서는 정말 필요하다는 거지요.
가장이 아이들과 소통하느라 바쁘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와 소통하느라 바쁘면 바쁠수록 행복합니다.
그 행복은 내 가정의 지체들이 밖에서 또 만들어 낼 소통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다음에 가정의 밖에서 마음껏 바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폄프 질을 해서 끌어 올리던 우물을 기억하십니까? 한 바가지의 물을 넣어야 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펌프질을 해도 하루 종일, 아니 일 년을 펌프질해도 물 한 컵 얻을 수 없습니다.
소통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 안에 먼저 나와 소통을 하시기 바랍니다. 아침에 거울 앞에서 양치질을 하면서 씩 웃어주십시오. 그 안에 하루를 열심히 뛰어낼 순박한 내 겉 사람이 서 있습니다. 그 겉 사람에게 속삭여 주십시오. “너를 오늘도 행복하게 해 줄게. 노력 할게. 너도 나를 위해 노력해주라.”
내 가족에게 상대에게 들어서 기분 좋게 하는 아주 간단한 실천 방법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당신 말이 맞아”
“일 리가 있어”
“하긴 그래”
“오-예”“앗- 싸”
내 몸이 나를 만났는데 내가 올바르지 못한 길로 헤매면 내 육신이 얼마나 고된 삶으로 힘이 들겠습니까. 먼저 나와의 소통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주변인, 평생을 함께 가야 할 내 가족과 소통하십시오. 그 사람들은 나의 가장 소중한 보물들입니다.
우리는 보물을 아무렇게 방치하지 않습니다.
가장 안전하고 가장 소중한 곳에 보관하지 않습니까? 내 가족에게 말 한마디 최고의 표정을 담아 전달해 보십시오. 그것은 더 넓은 곳으로 행복의 바이러스가 되어 전달되어지고 그것이 많은 이들에게 사회 속에서 소통으로 자리 잡아 갈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소통의 리더십이 되어 보십시오. 여러분을 진정한 소통의 리더십으로 세워보십시오.
시냇물과 같이 잘 흐르는 진정한 소통은 자기 자신과 평생 동안 함께할 가족, 그리고 친구, 친인척들과 먼저 이뤄져야 하며, 나아가 직장, 사회 전반에 걸쳐 점점 확대해 나가는 것이 진정 매력적인 소통의 주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불통, 고통은 가라. 내 이름은 지금부터 “소통”이다.
소통을 가로막는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에게 몰입하는 당신이 최고 멋쟁이 “소통의 달인”입니다.